#공감 詩/詩가 있는 공간

이렇게 깊습니다.

meeko 2009. 3. 1. 23:34

 

 

 

 

 

고진하

 

 


 

게으른 내 산책은 욕망입니다
길가에 핀 늦가을 싸리나무 마른 이파리처럼
흔들리고픈 순한 욕망입니다

 

 

하얀 억새와 함께 나부끼며 낮은
산모롱이 돌아서면
문득 딴세상인 듯 펼쳐지는 연곡 바다, 그 푸르르
밀려드는 물굽이는
혼자 걷는 내 생의 도반(道伴)입니다

 

그 바다 곁에
무명씨들 잠들어 있는 해변의 묘지도 지나면
새로 닦인 길이
날마다 처녀인 푸른 바다를 가로 지릅니다

 

 


 

 

 

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그 바다 앞에서
나도 수줍은 처녀입니다

 

 

밀물 때처럼 밀려오는 안개에 떼밀리며
돌아서면
이윽고 내 순한 욕망은 접히고
맑고 깊은 詩心이 불러주는 고마운 말씀들을
영혼의 수첩에 적습니다

 

 

집에 돌아와 신발끈을 풀어도 내
산책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은 나의 하루는
이렇게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