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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써보는 30년후의 일기#공간/소망향기 2009. 5. 2. 23:26
2039년 5월 8일 주일
오늘따라 세찬 바람이 불면서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교회 앞마당에 은은한 향을 날리던 라일락 꽃들이 이 바람에 하나둘씩 떨어져 바람에 흩어져 간다.
올해도 이런 봄날을 허락하심을 감사기도를 드린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라 어버이 주일로 섬겼다.
교회에서 미리 준비 해준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양말선물도 받았다.
오늘따라 예배시간 내내 눈물이 났다. 닦아내어도 또 멈추지 않는 눈물이.....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심이니라" 신명기 8:2~3
오랫동안 이 말씀을 부여잡고 살았는데 마침 목사님의 설교가 이 말씀이었다.
내 머릿속과 가슴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림들이 나를 울게 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고단한 삶들이었다.
참으로 시련들이 끊이지 않던 삶이었다.
가난했던 지난 삶들속에서도 내게는 만나로 나의 배고픔을 채우셨던 그분의 은혜에
앞선 눈물이었으며 또한 나의 애통한 삶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 넘치는 은혜임에 감사를 드리는 고백이 되었다.
지난 날 내가 섬겼던 분들은 이미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시고
이제는 내가 다른이들의 섬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나도 머지않아 갈 날이 가까왔음을 알고 있기에 마음은 바빠지지만 거동이 불편한 나로써는
마지막 시간들을 준비하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다.
다시 한번은 만나고픈 사람들의 이름을 써 놓고 그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외출이 어려워지니 마음만 담고 살다가야 하나부다.
내가 이곳으로 옮겨온지는 이제 다섯해가 되어 가고 지난날에 내가 '작은 예수'라는 공동체를 나의 후임으로 성실이 부부에게 물려주고 나는 이곳으로 왔다.
가족이 없는 두 어르신을 모시고 시작했던 공동체가 내가 그곳을 떠나올 때는 열다섯분이 계셨으니
아주 작지만 그 작음도 나눔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고 시간들이었다.
그곳에서의 삶들은 내 삶중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불러 일으킨 어려움들로 인해 도망치고 싶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며 사는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이유로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도 어느새 나의 행복한 얼굴의 주름으로 남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만났던 그분들 한분 한분들을 떠올려 보며 지금의 내 모습을 보게된다.
나 또한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모든 것이 불편한터라 지난 날의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많이 망설였었지만 이곳으로 옮겨 온 사실이 참 잘된 일이었다.
나는 이 시립 양로 시설에서 남은 삶을 살다 갈 것이고 그리고 그 어떤 남음하나 없이 가는 삶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함을 드리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늘이 내 75번째 생일이기에 홀로 남겨 있는 내게는 많은 생각이 겹겹이 떠오르게 된다.
비가 오는 날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내게 이 날 내게 보내주시는 축복의 비라 여김도
그리고 아직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면서
눈물섞인 웃음을 지어본다.
비가 오면 지병인 허리와 무릎이 더 아파오긴해도 비내리는 밖의 풍경들을 보면
내 마음은 마치 친한 벗이 찾아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만큼 다정스럽게 여겨진다.
오늘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이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나를 축복하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 가는 시간을 축복한다.
비록 늙어 볼품은 없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언제나 내게 위로가 되어줬던 음악들이 있어 지금부터는 잠시 젊은 날 그 시간으로 떠나보련다.
얼만만에 듣는 이 음악인가..........노인심리학 과제로 30년후의 어느 날에 쓰는 일기로 제출했다.
여러가지 상황들을 떠올리면서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었지만
그 날에는 이 모습이었음 하는 바람으로
옮겨 보았다.
30년후라는 시간....
과연 내게도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에도 내가 살아 있다면
분명히 지금처럼 비오는 날을 좋아하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무딘 맘으로 살아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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