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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9#공감 詩/비(마르탱 파주) 2010. 2. 24. 20:16
나는 자주 읽고 들었다. 비는 깨끗하게 씻어준다고. 인도, 대로, 지붕.....가리지 않고. 공리적인 이 왜곡된 생각은 비를 쓰레기를 말끔하게 쓸어내주는 공공서비스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씻겨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제의 흔적은 결코 시인하지 않겠지만, 씻는다는 것은 단지 때를 다른 곳으로 흘러가 쌓인다. 오늘날 소의 여정이 사육, 도축, 판매와 소비의 거대한 사슬 속에 상세하게 그려지듯, 장차 우리 베설물이 이동하는 행로도 조목조목 그려져야 할 것이다.
비는 자연의 냄새를 일깨우고, 곰팡이 향길르 내뿜는다. 그리소 하수구와 지하철 터널 속에 널린 죽은 쥐와 벌레의 분해 과정을 작동시킨다. 퇴비가 삭고, 박테리아가 증식하고, 바이러스가 자라 딸과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간다. 이미 창궐한 질병인 인류 역시 그런 부식토에서 생겨났다.
살아 있는, 썩어가는 그리고 죽은 물질들이 서로를 덮치며 환경을 오염시킨다. 색깔들이 황금빛이나 음빛을 띠고, 회색과 검은색 뉘앙스들이 더 짙어지고 섬세해진다. 반사광들이 나타난다. 밀랍이 존재와 사물들에게 고색을 입힌다. 비는 물질들의 혼합과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화학적, 생물학적 작용을 원할하게 해주는 촉매제이자 윤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