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3일.
제62회 Festival de Cannes(칸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카메라와 배우와 감독에 둘러싸여 있는 하얀 신사복의 백발의 노신사.
그의 이름은 Charles Aznavour였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 샹송계의 큰 별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있는 샹소니에 Charles Aznavour.(샤를르 아즈나브르)
그를 사랑하며 그에게 출세길을 열어주었던 Edith Piaf도 이미 세상에 없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Maurice Cheval!!!ier, Jacques Brel, Yves Montand
Georges Brassens, Charles Trenet, Leo Ferre 등도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올해 85세인 Charles Aznavour는 여전히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고, 월드 투어에 나서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작곡한 곡은 1천 여곡, 그동안 발표한 앨범은 100여 장이 넘습니다.
음악뿐 만이 아니라, 그는 6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흐느는 듯한 낮은 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로 들려 주었던 'She', 'La Mamma', 'La Boh?me',
'Isabelle','Mourir d'aimer', 'Que C'est Triste Venise', 'Les com?diens' 등이
그의 대표곡으로 1969년 Roy Clark이 열창한 'Yesterday, When I Was Young'은
그의 작품 'Hier Encore'를 영어로 개사해 불렀던 곡이었지요.
1924년 5월 파리에서 그루지야 태생의 아버지와
터키계 아르메니아인 어머니 사이에 출생한 그는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 입니다.

그의 아르메니아 사랑은 유명합니다.
Charles Aznavour는 그동안 프랑스 내 40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 이주민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자신이 아르메니아계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지난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으로 2만5,000명이 목숨을 잃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구호 모금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직접 자선단체를 세우고 아르메니아 구호지원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었죠.
그는 아르메니아의 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상임대표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헌신적인 모국 사랑에 아르메니아 정부는 2004년, 그에게 국민 영웅 칭호를 선사하며
아르메니아 국적까지 부여했고, 올해 2월 15일, 그를 스위스 대사에 임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6년 세계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고별공연을 갖었던 그는 지난 5월 22일
자신의 85회 생일을 기념하며 "For you, Armenia" 콘서트를 개최,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올해 85세의 노신사가 지나온 인생 여정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그의 대표작인
'Hier Encore'는 한해의 끝자락에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