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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의 저자 옥성호와 인터뷰
    #일상/말씀 2011. 8. 9. 03:56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의 저자 옥성호와의 부흥과개혁사 이메일 인터뷰 기사

    글쓴이: grace   08.08.22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kzJ/6958

     

     

    【 옥성호저자 인터뷰 】

    이글은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의 저자 옥성호와의 부흥과개혁사 이메일 인터뷰 기사입니다.



    1. 이번에 방언에 대한 책을 쓰셨습니다.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3편 <엔부기: 엔테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손꼽아 기다리던 독자들로서는 왜 갑자기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완결하지 않고 ‘방언’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방언에 대한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엔부기’의 큰 주제를 세 가지로 잡고 있었습니다. 음악, 신비주의 그리고 은사주의입니다. 은사부분에 있어서는 방언과 신유 그리고 가능하면 예언부분을 다루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놓고 준비하던 중 차츰차츰 은사부분에 대해서는 망설여지더군요. 무엇보다 교단에 관계없이 너도 나도 소위 말하는 ‘성령운동’에 몰입한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너무 많은 ‘적’을 만들것 같아서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주석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이미 너무 두꺼운 2부 마부기보다 더 두꺼운 책을 만들면 안돼지....”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은사 부분은 포기했더랍니다. 사 놓았던 은사 관련 책들도 유혹이 되지 않도록 저 멀리 치워놓았고요.

    그러던 중 2007년 여름이 좀 지나서인가요? ‘하늘의 언어’를 읽은 후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그렇게 제게 큰 충격을 준책은 몇 권 없을 것입니다. 물론....부정적인 면에서의 충격입니다. 제가 주변에서 수도 없이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사태가 그토록 심각하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생생하게 알았습니다. 연이어 손기철 장로님의 ‘성령님 고맙습니다’, 손기철 장로님이 멘토로 삼는다는 마헤쉬 챠브다의 ‘방언체험’을 비롯해 그 외 여러 권의 번역된 방언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굳이 ‘하늘의 언어’에 실린 내용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 방언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에게 있어서 ‘일반적인 얘기 수준’이라는 점을 깨닫고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어떻게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이토록 잠잠할 수 있는지, 논쟁조차 벌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던 중 깨달았지요. 교회 안의 사람들이 다 나 같아서 그렇다는 점을 말입니다. 엔부기에 쓰려고 했다가 반발이 무서워 포기했던 저나 베스트셀러와 대세가 주는 위압감에 가만히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결국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을 바꿔서...제 잘못을 깨닫고...본격적으로 방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2. 이번 책의 제목이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입니다. 이 제목은 기존의 김우현 PD가 쓴 ‘하늘의 언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앞에서 서술했듯이 제가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아예 쓰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제목은, ‘그건 하늘의 언어가 아니다.’였는데 너무 도발적이고 부정적(?)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목을 의문문으로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김 감독님의 책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옥성호 형제님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무엇인지요? 책의 주제와 핵심을 간단히 말해줄 수 있습니까?

    성경 속에 등장하는 방언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번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내가 방언하고 이런저런 효과가 있었으니 내게 성경이 무어라고 하는지를 갖고 태클 걸지 말라”는 태도를 한번만 접고 성경을 제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곧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될 ‘존 맥아더, 천국을 말하다’의 추천사를 제가 얼마 전에 썼습니다. 그 책에 대해서 제가 한 마디 한다면 참 ‘따분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이 성경이 천국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책들은 자신들이 직접 천국에 갔다 왔다는 주장들과 함께 각종 희한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맥아더 목사님의 책은 오로지 성경이 말한 천국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으니 그런 책들에 비해서 어떻게 따분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추천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천국에 관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은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교과서에 불과하다.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천국 갔다 온 사람들이 쓴 각종 희한한 체험담이다. 마치 수험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족집게 과외 선생이 집어준 예상 문제집이듯이 말이다.”

    방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악세사리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수많은 방언 책들을 한번 보세요. 고린도전서 14장 2절을 중심으로 한 서너 개의 구절을 장식용으로 붙이고 나머지는 세상에서 듣고 보도 못한 얘기들로 채워놓았습니다. 한번만이라도....그런 주관적 체험을 벗어나서 성경이 방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진지하게 보자는 것이 제 책의 요지입니다.


    4. 조심스런 질문이지만 ‘방언기도’에 대한 체험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언제 어떤 계기로 ‘방언체험’을 하게 되었는지요? ‘방언체험’을 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방언체험’은 옥성호 형제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군요. 지금은 과거의 ‘방언체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대학교의 한 수련회에서 은사를 가장 중시하는 한 강사로부터 엄청 많이 맞았었습니다. 방언하라고요. 기도하는데 얼마나 등을 때리면서 저를 괴롭혔는지.....아이고,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밤 얼마나 방언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 밤 ‘개구리 방언’, ‘살모사 방언’, ‘돈키호테 방언’ 등등 이름도 처음 듣는 이상한 방언들을 다 하더라고요. 정말로 개나 소나 다 하는데 나는 안 되니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맞으면서도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방언 한번 해 보려고요. 시키는 것을 다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어린 마음에 당시 ‘그 유명한 아빠도 못하는 방언을 내가 해서 아빠 코를 눌러줘야겠다’라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안 되더라고요....정말 좌절감만을 맛본 밤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10년이 흐른 후 뉴욕에서 신유와 방언 쪽에 유명한 한 권사님 집에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밤에 그 권사님이 저를 붙잡고 앉아서 방언을 받기 위해 기도하자고 하더군요. 사실 과거의 쓴 경험도 있고 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신기하게 방언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말입니다. 그 권사님으로부터 ‘제대로 받았다’라는 확인을 받고 방에 가서도 또 한참 했는데 잘 되더라고요. 그 뒤로 심심하면 가끔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책을 쓰는 동안은 방언 생각만 하니까 잠이 들면 꿈에서도 방언만 했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잠잠합니다.

    방언이 제 신앙생활에 미친 영향은......간단히 얘기하면 의구심만 더 생기게 했지요. “왜 사람들은 이걸 대단하게 생각할까? 정신과 입술이 따로 노는데 도리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되지 않나? 참 기독교는 이상한 종교다...” 당시, 이런 의구심만 더 들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방언은 일정수준의 스트레스와 주도자에 대한 신뢰가 증폭될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5. 옥성호 형제님은 이 책에서 현대 방언에 대해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무엇인지요?

    상황적 증거와 성경적 증거가 있습니다. 이 얘기하면 책을 안 읽을 것 같아서 그냥 이 질문은 뛰어 넘겠습니다. 한 두 문장 읽고 행여나 “그 정도는 나도 알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6. 만일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라는 옥성호 형제님의 결론이 맞다면 현실적으로 오순절 교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방언기도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또한 현재 방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방언을 보급하려고 방언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조언을 해 주어야 하는지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오늘날의 방언이 성경의 방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패커 박사 같은 분도 방언을 ‘기도형태’의 하나로 인정하자고 말할 정도이니까 말입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이 방언도 하나의 감정적 표출로 받아들이자는 분들의 주장이 일면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방언은 그러기에는 너무도 그 안에 많은 부작용들이 있습니다.

    특히 말씀에 대해서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교회에 발을 디디자마자 방언과 같은 체험을 통해서 신앙을 접하게 된 사람들의 경우 그 위험이 주는 수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분들은 ‘신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정신 차리고 앉아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형식상의 학교 수업이라면 ‘랄랄라’를 통해 느끼는 체험은 족집게 과외 선생이 주는 진짜 수업인 셈이지요.

    저는 방언에 집착하는 많은 분들이 사실상 마음 속 깊숙이 감춰진 믿음에 대한 회의랄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랄까....누르고 눌러도 순간순간 고개를 쳐드는 이런 근본적인 회의를 잠재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방언과 같은 신비 체험에 의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책 전체를 통해서 논증했지만 오늘날의 방언은 결코 성경의 방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방언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인양 말하면서 보급하는 그 어떤 움직임도 중지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은사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에 따라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선물 달라고 집단으로 모여 떼쓰는 것이 믿음입니까? 당장 중지되어야 합니다.


    7. 옥성호 형제님과 같은 방언관을 가진 분들을 흔히 ‘은사중지론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분들을 ‘은사지속론자’라고 부릅니다. 이 두 입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이며,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요? 그리고 각각의 입장을 잘 알 수 있는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이 입장의 차이를 빚는 가장 큰 이유는 오순절의 사건을 중심으로 한 사도행전의 사건들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구원론적 관점에서 볼 것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함께 각각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책은 Are miraculous gifts for today? Stanley N. Gundry Series editor, Wayne A. Grudem, General editor. Zondervan입니다.(부흥과개혁사 2008년 발간예정)


    8. 앞으로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또는 한국교회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예상하고 계신지요?

    글쎄요....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방언과 관련한 지금의 상황에 분명 우려를 갖고 있을 수많은 목회자들이 침묵과 무관심이 결코 답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심장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떠드는 방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모든 성도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장식품으로 전락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방언을 하지 않는다고 성령님이 교회에서 무시 받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교회에서 무시 받는 경우는 오로지 한 경우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나의 체험에 밀려나는 그때입니다.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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